정신질환 쉬어가기

말/글 2019. 2. 10. 08:21

※이 글은 의학적으로 좆도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저번에 짧게 말했는데, 우울증 약을 안 먹은지 현재[2019.02.10]로 3주~4주쯤 됐다.

의사와의 조율사항은 트라조돈을 안 먹는 것이었지만 트라조돈을 안 먹으면 잠을 얕게 자고 땀범벅이 되는 좆같은 증상이 있어서 아예 다 끊어버렸다.

분명 끊기 직전까지 복용 중이던 벤팍신서방이나 인데놀, 자이렌 3가지 중 하나(혹은 뭔가 복합적으로)가 이런 증상을 유발한 것일텐데... 몰랑!


약을 끊으면서 느낀 변화를 말해보자면 일단 첫째로 처먹는 양이 살짝 늘었다. 그리고 그 이유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인간은 음식을 삼킬 때 조금이지만 기쁨을 느낀다나 엔돌핀이 나온다나 뭐라나... 암튼 뭐 그런 소리를 어디서 들었던거같은데,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요즘 나는 뭔가를 삼키고 싶어 하고 있다. 뭔가가 먹고 싶다 생각한 적이 없는건 아니지만 이전에 비해 명료해졌다. 아니, 기분탓일지도...(솔직히 그렇게 확신할 수 있는 변화는 아니다)


둘째로, 신체적 텐션이 변했다. 이전에는 트라조돈에 의한 깊은 수면+ 기상 후 아빌리파이정으로 각성상태가 빠르고 선명하게 찾아왔었다.

현재는 일어나도 나른하고 그렇다(우울감으로 인한 졸음은 아님).

나는 나의 각성 수준을 파악하는 방법으로 노래나 시간의 체감 속도를 쓴다. 간단히 말해서 어정쩡한 각성 상태에선 시간이 빨리 간다는 것.

요즘은 시간이 존나 잘 흐른다. 덕분에 예전처럼 알바 갈 준비를 하면 몇 분씩 오차가 생겨서 자꾸 뛰어서 가게 되었다. 존나 좆같아서 시발 자전거 수리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함.


앞의 두 개는 그냥 그런거고 내가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울컥하는 감정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1년을 기계로 살았냐하면 그... 정도는 아니다(아마도). 그러나 이런 감정은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어느 정도의 정신적 격벽이 있었는지 말해보자면...

내가 정말 좋아하던 일러스트레이터분이 병환으로 17년 11월에 돌아가셨었다. 그 분이 사실상 절필선언을 했던 8월 즈음, 나는 그 사실을 듣고 울었다.

'왜 이렇게 빛나는 사람이, 나 같은건 이렇게 멀쩡한데...'

나는 울면서 저런 생각을 했었다. 

우울증 치료를 시작한 9월 이후, 나는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전해듣고도 전혀 울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분이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적으면서 울고 있다. 참 웃긴 일이다.


인간의 감정이 어떤 구조로 형성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내게 있어선 감동과 슬픔이 유사한 형태의 감정인가 보다. 

치료 중이던 500여일의 나날에는 없었던 기분. 오랜만이고 반가운 기분이라서 한껏 즐기고 있는 중이다.

한동안 억눌려서 그런지 조금 조절이 안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뭐 상관업뜸.


어차피 완치를 목표로 하지도 않았고, 완치라는 게 없을 것이고, 언제 또 마주할 지 모르니 이건 쉬어가는 코너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나는 저런 감정들을 양식으로 뭔가를 만드는 인간이라서 1년동안 그림그리는 것도 뭘 만드는 것도 푸석푸석한 느낌이었는데

이제 아주 그냥 질펀하게~~

이쿠조~~

(이 후 딸 치러 감)


Posted by 약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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